
포용 태권도를 지향하는 방향에서 다시 선다
태권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강한 기술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태권도는 개인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관계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날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가치는 바로 포용(包容)이다.
포용은 단순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성장의 기회를 나누는 태도다. 태권도가 추구하는 예의와 존중, 배려와 사랑의 정신 역시 결국 포용의 가치로 귀결된다.
기회를 나눈다는 의미는 동행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같은 공감대가 있다. 포용은 그런 공감대를 갖춰야 한다. 초등학교 때 내 친구는 나와 1년을 같이 학교를 다녔다. 목발이 있어야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지금도 없다. 공감대가 느껴지는 친구와 동행한 것이다.
칼이 사람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상처를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듯이, 수련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기술을 배우더라도 어떤 목적과 가치관으로 수련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그렇기에 태권도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앞서 수련의 목적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포용 태권도의 방향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 태권도와 비장애인 태권도는 교육 방법과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다르지 않다. 건강한 삶, 자아성장, 공동체 참여, 그리고 인간 존엄의 실현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흔히 장애를 특정 사람들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긴 시간 속에서 본다면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사고와 질병,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배려하고 함께한다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자신을 섬기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포용 태권도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장애인을 위한 태권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품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곧 낮은 자임을 배운다.
태권도가 낮은 자를 섬기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수련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수련의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기다려 주며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자체가 포용의 실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의 가치를 신체 기술의 향상에서 찾는다. 물론 정확한 품새와 강한 발차기, 뛰어난 경기력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신체 기술보다 정신 기술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된다.
결국 태권도는 처음부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수련하는 무도다. 몸을 단련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기술을 익히면서 인성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노소, 국적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힘이 된다.
포용 태권도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태권도가 본래 가지고 있던 정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가 태권도 안에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포용 태권도의 길 위에 서게 된다.
태권도의 미래는 더 강한 사람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다. 포용 태권도는 기술을 넘어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넘어 공동체를 세우며, 공동체를 넘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태권도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이다.
수련의 양면성처럼 포용은 쉽지만 어렵기도 하다. 사회적 동행의 물방울과 같은 역할을 태권도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방울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포용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태권도의 포용은 배려가 아니라 동행이다. 기회를 동행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사회의 물방울이 거대한 바다가 된다.
함께 걷는 길이 곧 태권도가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가치이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태권도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태권도무예신문 부회장 겸 편집위원 김선수 체육학 박사




포용 태권도를 지향하는 방향에서 다시 선다
태권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강한 기술을 익히는 데 있지 않다. 태권도는 개인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관계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날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가치는 바로 포용(包容)이다.
포용은 단순히 함께한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성장의 기회를 나누는 태도다. 태권도가 추구하는 예의와 존중, 배려와 사랑의 정신 역시 결국 포용의 가치로 귀결된다.
기회를 나눈다는 의미는 동행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같은 공감대가 있다. 포용은 그런 공감대를 갖춰야 한다. 초등학교 때 내 친구는 나와 1년을 같이 학교를 다녔다. 목발이 있어야 걸어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지금도 없다. 공감대가 느껴지는 친구와 동행한 것이다.
칼이 사람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상처를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듯이, 수련 또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기술을 배우더라도 어떤 목적과 가치관으로 수련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그렇기에 태권도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앞서 수련의 목적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포용 태권도의 방향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 태권도와 비장애인 태권도는 교육 방법과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다르지 않다. 건강한 삶, 자아성장, 공동체 참여, 그리고 인간 존엄의 실현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흔히 장애를 특정 사람들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삶의 긴 시간 속에서 본다면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사고와 질병,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배려하고 함께한다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자신을 섬기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포용 태권도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장애인을 위한 태권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품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곧 낮은 자임을 배운다.
태권도가 낮은 자를 섬기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수련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수련의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기다려 주며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자체가 포용의 실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의 가치를 신체 기술의 향상에서 찾는다. 물론 정확한 품새와 강한 발차기, 뛰어난 경기력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신체 기술보다 정신 기술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된다.
결국 태권도는 처음부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수련하는 무도다. 몸을 단련하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기술을 익히면서 인성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노소, 국적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힘이 된다.
포용 태권도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태권도가 본래 가지고 있던 정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가 태권도 안에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포용 태권도의 길 위에 서게 된다.
태권도의 미래는 더 강한 사람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다. 포용 태권도는 기술을 넘어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넘어 공동체를 세우며, 공동체를 넘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태권도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이다.
수련의 양면성처럼 포용은 쉽지만 어렵기도 하다. 사회적 동행의 물방울과 같은 역할을 태권도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방울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포용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태권도의 포용은 배려가 아니라 동행이다. 기회를 동행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사회의 물방울이 거대한 바다가 된다.
함께 걷는 길이 곧 태권도가 지향하는 사람 중심의 가치이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태권도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태권도무예신문 부회장 겸 편집위원 김선수 체육학 박사